어제 영화 '부러진 화살'을 관람한 후 든 생각을 정리해본다. 스포일러를 상당수 포함하므로....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뒤로가기를 살포시 눌러주기를 바란다.
이 글은 리뷰가 아니다. 내 생각을 정리하는 용도로 쓰는 블로그 이기에 단지 영화를 본 후 든 생각을 정리했을 뿐이다. 리뷰를 원하시는 분들은 다른 분들의 좋은 글들을 찾아보시길.
영화 '부러진 화살'은 영화라기 보단 사법부를 고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큐 같은 느낌의 영화였다. 영화 전반에 걸처 당시 김교수가 느낀 부당함을 관객이 세세히 공감할 수 있도록 했고 사법부는 거짓말쟁이에 어처구니가 없을정도로 뻔뻔한 집단으로 묘사됐다. 감독이, 그리고 이 영화의 제작을 뒷받침한것이 분명한 김교수가 의도한대로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분노하고 극중 박 변호사의 "이런 더러운 나라에서 자식들을 키우고 싶냐"는 대사에 공감하였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말로만 듣던 권력의 폭력을 직접 목격한 듯한 기분이었고 우리 사법부에 대한 실망감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과연 그들이 오만에 가까운 권위를 이용해 어떤 정의를 가려내는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최근 내가 배운 삶의 법칙 중 하나는 "싸움이 있을 때는 양쪽 주장을 다 들어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김교수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만 보고 "대한민국은 썩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친구와 싸우고 들어온 아이를 보고 내 아이가 얼마나 다쳤는지만 근심하는 부모와 같다. 이 때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일단 상처를 소독해주고 친구는 얼마나 다첬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의외로 내 아들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물론 김교수가 가해자란 말은 아니다. 다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영화의 대사와 법정기록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법정기록을 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판사와 검사의 표정, 인물들의 눈빛, 목소리 억양 등은 분명 연기고 감독의 연출이다. 언어 외적인 의사소통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전달하는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연기하냐에 따라 법정의 분위기가 다르게 연출될 수 있다. 팩트와 픽션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픽션으로 인해 사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면 팩트는 뭔지 알아보려는 노력이 판단에 앞서야 한다.
사법부를 옹호하고자 하는의도는 아니지만 자고로 이런 민감한 일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받아들여 하므로 영화를 보면서 든 몇가지 의문점들을 나열해본다.
1. 사건의 원인이 된 김교수가 패소한 재판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그리고 자세히 묘사되지 않은 그 판결이 잘못된 판결이라는 것은 영화 내내 기정사실로 가져간다. 영화에서는 김교수 혼자 수능시험문제 출제와 관련해서 타 교수들과는 달리 잘못을 인정하려는 정직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억울하게 해임됐고 재판은 날조된 것이라고 한다. 정말 억울함을 해소하고자 했다면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았을까?
2. 어떤 피고인이 재판 결과에 불복하여 석궁을 들고 판사를 위협, 발사했다는 사실만 볼 때 사법부가 상당한 충격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이 된다. 자신이 패소시킨 피고인들마다 석궁을 들고 집 앞으로 찾아온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는가? 그렇기에 재판이 시작하기도 전에 '사법부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것 또한 어처구니 없는 사법부의 오만한 행동들 중 하나로 치부해버린다.
3. 일단 김교수는 두 가지 죄에 대해서는 유죄다. 협박죄와 살인미수죄. 하지만 극중에서는 '무죄'라는 단어가 상당히 자주 나온다.
4. 법을 잘 모르지만 석궁이 우발적으로 발사됐다면 살인미수가 성립하지 않는가보다. 그래서 김교수 측에서는 우발적인 발사를 주장하는데 이 또한 사실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김교수가 계단에 있고 피해자가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상황에서 김교수가 장전된 석궁을 피해자에게 겨누고 있었다. 내가 만약 피해자라면 몸싸움을 하기 보단 일단 두 손을 들고 김교수를 자극하지 않도록 노력했을 것이다. 목숨은 소중하기 때문에. 하지만 이 팽팽한 상황이 어떻게 몸싸움으로 번졌는지는 영화에는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다만 화면이 한 차례 암전된 후 다음 컷에서는 둘이 몸싸움을 하고 있다.
4-1. 이처럼 피고인 측은 사건당시의 정확한 상황을 말하려 하기 보단 증거의 불충분함만을 피력하고 있다. 만약 정말 억울했다면 피고인이 직접 증인석으로 올라와 "사실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었다"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영화에서 그런 장면은 없었다.
5. 영화에서는 화살을 가지고 한 실험이 두 개가 나온다. 첫번째 실험에서 화살은 돼지고기를 15cm나 관통하는 위력을 가진 것으로 판단됐고 두 번째 실험에서는 이 위력을 가진 화살이 벽을 향해 발사됐을 때 화살이 부러진 것으로 묘사됐다. 그렇다면 상당히 강한 충격을 받아야 화살이 부러지는 것인데 몸싸움중에 시위에 걸려 있던 화살이 어떻게 부러진 것인가?
6. 방금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당시 종결심을 기록해놓은 페이지를 봤다. (http://daybrush.com/16398) 여기엔 경찰측에서 실험한 불완전 장전, 완전 장전 위력 비교 실험에서 불완전 장전시 화살은 발사되었으나 사과를 뚫지 못할 정도로 위력이 약했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불완전 장전시 화살이 아예 발사되지 않은 것으로 묘사됐다. 영화가 온전히 사실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김교수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봣기 때문에 사법부를 옹호하는, 또는 김교수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하지만 이는 내가 사법부를 옹호해서가 아니라 어떤 것이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 때문이다. 내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김교수의 억울함과 재판 진행 과정에서의 부당함은 영화에 충분히 묘사되었다고 생각된다. 만약 같은 사건을 두고 사법부 입장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봣더라도 나는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했을 것이다.
- 2012/01/2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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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 현실 고발 영화의 정석 2012/01/21 22:43 #
[부러진 화살, Unbowed, 2011]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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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1 22:43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랸 2012/01/21 23:18 #
영화 자체는 재미있더군요ㅎ 칼슈레이님처럼 영화 평론가는 못되어 자세한 평은 못 내리겠지만 ㅠ 흥미로웠어요 ㅎ 하지만 언제나 이런 영화, 소설 따위를 보면 픽션을 벗긴 팩트를 알아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ㅎ
ASDASD 2012/01/22 00:21 # 삭제 답글
이 문제는 상당히 첨예한 대립이 존재하는 사건으로, 도가니와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사건입니다. 애초에 김교수가 화살과 석궁을 들고 판사 집에 찾아가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위협만 하려고 했지, 위해를 가할 의도가 없었다니, 도대체 이게 말이 됩니까.
ㅁㄴㅇㄹ 2012/01/22 00:23 # 삭제 답글
교수가 아니라 일반인이 칼을 들고 다른 일반인의 집에 찾아갔다면, 누가 봐도 위협용으로 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건 전문직끼리의 다툼이다 보니까, 게다가 김교수가 법학 관련 지식이 풍부해서 재판 과정에서 법리논쟁을 끊임없이 벌이다 보니, 이른바 사법 피해자 - 억울하다면서 재판과 관련된 판사, 검사, 변호사, 직원까지 모조리 고소하는 사람 - 들의 우상이 된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이 문제를 책으로 다룬 인터뷰 전문 저자의 시각이 그쪽으로 치우친 면이 있고, 영화까지 그렇게 된 모양이군요.
대공 2012/01/22 03:13 # 답글
http://blog.naver.com/hunpk1녹취록을 참고하시는걸 권합니다
fdgdg 2012/01/22 07:59 # 삭제
참고해봤자 별 거 없음, 김교수 주장은 일관되게 사법부가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것임. 사법부는 절차상 하자를 대충 뭉개고 넘어간 죄가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실체적 진실에 맞는 판결을 했다고 볼 수 있음.
대공 2012/01/22 10:07 #
fdgdg//제말이 그말입니다
ㅇㄴ 2012/01/23 18:24 # 삭제 답글
그 실체적 진실이 뭔지 적법한 절차에 의한 증거로 증명이 되었느냐하는 것이 문제아닐까요?윗분도 사법부가 절차상하자를 뭉개고 대충 넘어간 죄가 있다고 하셨는데, 이건 상당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바꿔 말하면, 별 증거없이도 유죄를 내릴수 있다는 말과 같게 들리니까요
dd 2012/01/24 16:50 # 삭제 답글
예를 들어 성폭행의 경우 증거 없이도 유죄 가능합니다. 이 사건의 경우 유죄를 내릴 수 있는 정황 및 그 정도의 증거는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법 시스템이 그 정도로 엉망은 아닙니다. 미국의 경우 당연히 사법권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훨씬 높은 수위의 처벌을 받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사법권이 붕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걸 기득권이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서 훨씬 높은 수위의 처벌을 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느껴집니다.